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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한기(農閑期) 실종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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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훈 논설위원
기사입력 2020-01-22

▲ 강정훈 논설위원

경제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여기는 시대이다. 경제활동은 마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환상의 작업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실상을 제대로 살피면 공짜는 없다. 오히려 장차 치러야할 대가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여기저기에서 부산함을 떠는 경제활동은 좀 더 긴 흐름에서 보자면 대체로 소탐대실에 속한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임에 틀림없지만 유감스럽게도 행태가 지혜로운 경우는 드물다.

 

그나마 농사는 상당히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에 해당하기에 다행스런 영역이다. 의도를 가지고 자연을 재조정하는 일이긴 하지만 착취와 핍박의 지경으로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때로 자연이 거칠고 사나움을 부리면 운명이라 여겨 순응하기도 한다. 더러 원망도 해보지만 계속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쉬고 멈추는 기간이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겠다. 전통의 방식을 취하면 농사는 일 년을 기준으로 크게 두 시기로 나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분주한 농번기와 쉬고 놀고 즐기며 준비하는 농한기가 바로 그 둘이다.

 

이 둘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고 묻는다면 농한기라고 답하고 싶다. 논다는 것은 인간의 주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놀이는 인간의 본 모습에 보다 가까워지는 행동양식이다. 놀이는 문화와 예술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사상이라는 것 또한 이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고단하고 분주한 노동을 통해 생계를 도모하는 반면 여유로움의 공간은 존재를 단단하게 만든다. 그냥 멍하니 있을지라도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여백이 있어야만 창조가 생겨나는 법이다.

 

그런데 점차 농번기는 실종의 상태가 되어 아득해진 느낌이다. 농사가 산업의 형태로 진행하면서 사실상 농번기가 사라진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듯하다. 사시사철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만 하는 구조가 이미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보니 편히 쉬고 노는 일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사람만 그런 지경이라면 그저 업보려니 치부하겠지만 문제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가장 우려가 되는 지점은 땅을 비롯한 자연환경도 쉬는 짬을 얻지 못하게 되는 대목이다. 땅이 구박받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을 텐데 말이다.

 

시절로 보면 지금이 농한기에 해당한다. 수확을 마치고 힘들었던 시간들을 보상삼아 휴식을 취하면서 다음 해를 준비하는 기간이다. 거기에는 축제와 놀이가 빠질 수 없다. 최대의 명절인 설과 대보름이 여기에 자리를 잡는다.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즐겁게 놀면서 충전하는 시간은 너무나 소중하다. 그래야만 새해맞이의 새로운 마음을 차분하게 다질 수 있다. 바야흐로 눈앞에 경자년 새해가 다가왔다. 아무쪼록 농한기는 농한기처럼 잘 놀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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